인공지능과 AI, 로봇의 발달은 앞으로 인류의 노동을 대체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인공지능으로도 대체되지 않는 어떤 영역에서 진짜 우리 인간의 가치를 찾아야 될까요? 인공지능과 AI, 로봇의 발달은 앞으로 인류의 노동을 대체하게 될 것이다. 이런 얘기를 진행했습니다. 제가 가르치는 과목에는 사회문화라는 과목이 있고, 그 과목이 사회탐구 교과목으로서 수능 과목 중에 하나인데요. 15년 전쯤에 사회탐구 교과서에는 이런 말이 적혀있었습니다. 인공지능과 AI, 로봇의 발달은 앞으로 인류의 노동을 대체하게 될 것이다. 여러분들 많이 들어보셨던 제레미 리프킨의 노동의 종말이라는 책, 한 번쯤은 들어보셨나요?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인간 직업의 80% 정도가 대체될 수도 있으며, 때로는 인간이 노동을 상실하고 기본소득으로 살아가야 될 수 있다는 경고가 철학책 속에 많이 나오면서, 그때 미래에 대한 예상이 이런 것들이 나와있었죠. 단순 노동은 기계로 대부분 대체될 것이며, 고차원적인 지능을 다루는 영역에 대해서만 인간이 자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 때로는 15년 전 교과서에 있는 예측이 철저히 틀린 것 같다라는 느낌을 받게 되는 순간도 있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유튜브에서는 약 150만 뷰 정도 제 간단한 쇼츠 영상이 알고리즘에 떴는데요. 제가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면서 그것이 따로 쇼츠로 만들어질지 모르고 아마 팬페이지에서 만들어진 것 같아요. 우리 수험생들 가르치다 보면 고3 학생들이 꿈이, 꿈이, 주로 의사가 되고 싶다거나 아니면 경영학과에 가서 CEO가 되고 싶다거나 아니면 로스쿨에 가서 변호사가 되고 싶다거나 꿈꾸는 학생들이 많다 보니 그런 동기부여 강의를 좀 하려고 언급한 내용 중에 한 마디였습니다. 제 후배 중에 변호사 시험을 붙고 그리고 김현장에 갔다가 거기서 대형 사건을 많이 하고 또 창업을 해서 로펌을 차린 후배 두 명이 저에게 찾아왔어요. 편안한 대화 자리 속에서 다음과 같은 얘기를 하더라고요. 중소형 로펌을 만들고 인턴을 6명 변호사를 신입 변호사를 채용했는데 그들에게 변론과 관련해서 서류를 준비하라고 했더니 일주일 걸려 가져온 결과물이 본인이 재미나이 또는 GPT 또는 변호사들이 사용하는 인공지능 어플을 이용해서 1시간 만든 것보다 성과가 높지 않아서 앞으로 이 인턴을 추가적으로 정규직 채용하지 않을 것 같고 가면 갈수록 신입 변호사보다는 시니어급의 똑똑한 판단을 해서 AI가 지금 얘기하고 있는 게 거짓말인지 아니면 가짜 거짓 정보인지를 정말 선명히 가려낼 수 있는 소수의 변호사 이외에 변호사 직업이 사양세를 걷게 될 것 같다는 물론 개인적인 견해였습니다. 인공지능이라는 내용을 가지고 강의를 하는 매에 있어서 우리의 예측을 빗나갈 정도로 과학기술이 아주 빠른 속도로 발전해가고 있으며 거기서 우리는 어떻게 예측을 하고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가장 우리가 인공지능의 시대에 잘 판단을 내리고 미리 대비하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사실 저는 과학 전공자가 아니라 윤리학, 인문학 전공자입니다. 평생을 철학 공부를 해왔고 평생을 어떻게 하면 학생들에게 쉽게 철학자들을 전달해야 할까요? 어떤 철학자들을 전달해 줄 수 있을지를 고민해왔던 사람입니다. 요즘은 저도 인공지능 챗봇들을 사용하면서 인간의 지식의 영역이 한 단계 변화를 겪는 변역점 앞에 놓여 있구나 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평생을 공부해오고 책을 읽어오고 정리해왔던 것들이 너무나도 빠른 속도로 변해가는 기술력 속에서 어찌 보면 무의미해져 갈 수도 있다는 느낌과 함께 요즘도 학부모님 대상 강연을 가면 학부모님들께서 많이 물어보세요. 이렇게 인공지능이 빠르게 발달하는 시대에 우리 아이는 영어유치원을 보내야 할까요? 대치동 강의가 의미가 있을까요? 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을 하시니깐요. 저는 인문학 전공자니 오늘 조심스럽게 간단히 이런 미래의 변화에 대한 인문학적 질문을 좀 드려보고자 합니다. 잠시 저의 고등학교 시절 글짓기 대회에 참여하고 싶습니다. 제 작품으로 좀 가보겠습니다. 여러분들 혹시 마루인형 또는 마론인형이라고 부르는 인형 알고 계시나요? 아이들이 옷을 갈아입히기도 하는 3차원 공간의 인형이요. 저는 어릴 때 가난하게 자라났습니다. 여러분들이 많이 보시던 기생충이라는 그 영화 속에 반지와 월세빵 같은 퀴퀴한 냄새가 나는 방 속에서 중학교 시절을 보냈고 그 시절 제가 겪었던 가장 큰 일은 이렇게 폭우가 오는 날 집 앞에 야산이 산사태로 무너져 내리면서 그 무너진 산사태에 집이 토사에 묻히면서 집을 잃게 됐던 경험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데요. 어릴 때 너무 가난하게 살았던 나머지 저는 그 마론인형 하나 그때 당시 가격도 만 원, 이만 원 정도밖에 안 했던 것 같은데 그거 하나를 사지 못해서 천 원도 안 되는 쓰레기였어요. 천 원도 안 되는 쓰레기였어요. 스티커 인형이라고 해서 종이 인형, 2D 인형이죠. 그 종이 인형을 가지고 놀았던 기억이 납니다. 같이 상상해보세요. 자, 여기 종이 인형이 있습니다. 제가 종이 인형을 들어 올려서 그 옷을 갈아입히기 위해 스티커를 붙여주고 다시 종이 인형을 원래 자리에 내려놓으려고 합니다. 2차원의 세계 속에 연애를 하는 철수와 영희가 있고 저는 영희를 들어 올려서 영희의 원피스를 갈아입혀줬습니다. 그리고 영희를 내려놓았죠. 고차원적 세계. 3차원의 공간과 시공간에 살아가고 있는 저는 영희와 철수의 메커니즘을 전부 다 고차원 세계 속에서 이해하고 있지만 아마 2차원 세계를 살고 있는 철수 입장에서는 다르게 보였을 겁니다. 자기가 이해하는 2차원의 세계 속에서 사랑하는 여자친구 영희가 어느 순간 사라집니다. 그리고 다른 옷을 입고 뿅 하고 나타나죠. 철수는 기적이라고 여기지 않을까요? 자 우리 2차원의 세계로 와 볼게요. 여기 평생 동안 제대로 없었던 제 남자친구가 하나 있다고 칩시다. 연애는 왜 이렇게 어렵죠? 저는 연애 고자이지만 일단 가상의 남자친구가 차은우를 닮았다고 제 멋대로 상상하겠습니다. 3차원의 공간과 불완전한 4차원의 시간 속에서 제가 이렇게 걸어가고 있는데 제 남자친구가 갑자기 사라집니다. 그리고 옷을 갈아입고 제 눈앞에 다시 나타난다면. 저는 그때부터 아마 신앙심이 생길 것 같습니다. 기적이라는 게 있구나. 우리 차원의 세계에서 이해되지 않는 뭔가 고차원적인 영역의 절대자가 존재하나? 라는 생각도 할 거예요. 제가 지금 말씀드린 건 제가 고3 때 썼던 글의 일부였는데요. 인간의 신앙은 무엇으로부터 오는가? 어찌 보면 고차원적 물리학 세계 속에서 우리가 이해되지 못하는 신비한 영역은 물리학적으로 풀리지 않습니다. 물리학적으로 풀리는 것이 아닐까라는 그런 고민을 담은 글이었는데 그때 글짓기 대회에 상을 탔던 기억이 납니다. 인간은 본인의 세상 속에서 알지 못하는 메커니즘에 의해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두려움을 가지거나 신앙심을 가지거나 또는 낯설어해왔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종교의 기원이기도 했고요. 유발 하랄이라는 아주 유명한 철학자는 그의 책 에서 인공지능 시대의 도례를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AI 알고리즘과 메커니즘 속에서 인공지능 시대의 도래가 강인공지능 또는 AGI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으시다시피 스스로 작동 가능한 그 인공지능의 시대가 열리면 그것이 인간에게 새로운 신앙의 출발일 수도 있겠다라고 얘기하는 분석이 나와요. 여러분이 생각하시기에 신앙과 종교는 무엇으로 존재하게 되나요? 우리는 때로는 인류 역사를 보면요. 우리는 때로는 인류 역사를 보면요. 내가 알지 못하는 미래에 대해서 물어볼 때 무슨 사람을 만나는 게 더 좋은지, 몇 살에 결혼하는 게 더 좋은지, 어떤 전공을 선택하고 어떤 직업을 선택하는 게 좋은지, 여기서 퇴사를 하고 이직을 하는 게 좋은지를 물어보는 곳에서 신앙의 영역에 의존해온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인공지능 챗봇의 발달로 이제 인간은 아주 빠른 속도로 인공지능 챗봇에게 오늘 저녁에 무엇을 먹을지, 이번 주에 데이트를 가는 것이 좋을지, 어떤 영화를 볼지, 그리고 어떤 진로를 선택할지를 물어보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인류에게 100% 이해 불가능한 새로운 AGI, 즉 인공지능 에이전트의 등장들이 인간에게 새롭고 낯선 시대를 열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재미있게 공부했던 이론이 하나 있었습니다. 제이론이라는 이론이었는데요. 제이론이라는 이론이었는데요. 재난을 얘기할 때 제, 이, 낯설고 상서로운 일을 얘기할 때 이, 그리고 이론을 뜻하는 논인데요. 제이론이라는 이론은요. 천재지변이 날 때, 폭우와 뇌우와 쓰나미와 같은 큰 격변이 일어날 때마다 사람들이 조선시대에 도대체 이런 재난이 왜 나타나는지를 이해하지 못하여 그 재난의 원인을 왕의 부덕에서 찾던 이론이었습니다. 조선시대 성리학 이론의 한 아류이론이었습니다. 조선시대 성리학 이론의 한 아류이론이었습니다. 그때만해도 과학기술이 발달하기 전이고 지금처럼 모든 것을 검증하고 모든 것을 과학적인 사고로 바라보기 전이라 그런지 조선시대의 그 이론을 보면서 저는 Wow! 과학 무�ongo la ignorancia, a傳연문 curtain, maarten de lachant concentrada in nas theoretical technology. 이제는 누가 여러분 친구 또는 직장 동료 중에 엄청난 폭우와 엄청난 가뭄으로 누군가 천재지변으로 고생하는 장면을 보고 있는데, 이런 장면을 보고 있는데 같이 TV 뉴스에서 그 끔찍한 기사를 접하면서 이게 다 대통령을 잘못 뽑아서 그래 라고 얘기하는 사람이 있다면 여러분들은 그 사람과 같이 가까이 하고 싶으신가요? 아마 그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인류의 문명은 이 제이론이 사그러들어 갔듯이 과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점점 탈신성화, 탈종교화 되어 갔습니다. 그런데 인공지능의 등장 그리고 인공지능의 점점 강력한 기술의 발달은 때로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메커니즘의 세계 속에서 2차원 세계의 철수와 영의를 들어 올렸던 고차원의 저처럼 저의 세계에서 무언가 이해하지 못하는 메커니즘으로 인간을 이끌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 그런 철학적 고민들이 지금 전 세계적으로 많이 논의가 되고 있습니다. 조금 더 현실적인 이야기들로 4가지 키워드가 있습니다. 4가지 키워드로 인공지능 윤리를 정리해 보려고요. 저는 보통 인공지능 관련 윤리 강의를 할 때 4가지 키워드로 소개를 드리는데요. 첫 번째는 선택의 문제, 두 번째는 불안의 문제, 세 번째는 혐오의 문제, 네 번째는 시간의 문제로 접근해 봅니다. 첫 번째는 인공지능과 관련해서 우리가 절대로 빠지지 않고 논의해야 될 것은 선택의 문제입니다. 하버드대학교 철학과에선 정의를 강의하는 마이클 샌델 이라는 교수가 그 정의론이라는 강의의 시작 도입 후에 늘 묻는 질문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트롤리 딜레마로 알려져 있는 질문이에요. 여러분들은 열차의 기관사입니다. 열차의 브레이크가 고장났다는 걸 알게 됐고 이대로 열차가 직진하게 되면 열차가 정차역에 멈출 것이라고 믿는 열차 선로를 보수하고 있는 공무원 6명이 있는데, 열차 선로를 보수하고 있는 공무원 6명의 영상이 이렇게 되어 있어요. 열차 선로를 보수하고 있는 공무원 6명이 이렇게 되어 있고요. 열차 선로를 보수하고 있는 공무원 6명이 이렇게 되어 있고요. 사망하게 됩니다 비상철로 하나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여러분들이 직진이 아니라 비상철로로 오해하면 지난 20년간 그 비상철로에 사람들이 간 적이 없었지만 그 비상철로에 갔을 때 6명은 살릴 수 있지만 일반 시민 한 명이 열차가 안 올 것이라고 철저하게 믿고 걷고 있었기 때문에 사망하게 됩니다 제가 고등학교 윤리수업 시간에 매주 첫 주에 묻는 질문과 같은 질문입니다 여러분들도 한번 같이 대답해 주세요 쉬운 질문이니까요 이대로 직진하면 6명이 죽고 비상철로로 오해하면 한 명이 죽습니다 여러분들은 6명이 죽는 직진을 선택하시겠습니까? 한 명만 죽는 오해를 선택하시겠습니까? 맨 앞에 분께 제가 여쭤볼게요 직진 오해 직진이요 6명을 죽이시는군요 과감하시네요 간단히 잠깐 거수로 여쭤볼까요? 나는 비상철로로 오해하겠다 손 감사합니다 내려주세요 나는 직진하겠다 손 딱 5분이 손 드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저는 윤리를 가르치는 강사다 보니 여기서 직진과 오해할 때 각각 철학자들을 언급을 합니다 최대다수의 최대 행복을 얘기한 영국의 제레미 벤담이라는 철학자가 수수의 희생으로 오해하겠다 손을 들여줬습니다 수수의 희생으로 다수를 살릴 수 있다면 결과적으로 옳다고 얘기한 공리주의 농거를 들어서 수수의 희생으로 멈출 수 있다면 비상철로로 오해해야 된다는 결론을 얘기하거나 또는 다른 선택지로 항상 인간을 존엄하게 대하고 언제 어디서나 내 자신에게 있어서나 타인에게 있어서나 인격을 절대로 수단화하지 말라는 칸트의 철학을 들어서 임마누엘 칸트라는 독일 철학자의 철학을 들어서 인격을 절대로 수단화하지 말라는 칸트의 철학을 들어서 이 여섯 명을 살리기 위해 한 명을 수단이나 도구로 전락시켜서는 안 된다라고 얘기하면서 상황 속에 이미 놓여있던 여섯 명은 어쩔 수 없었다 할지라도 이 한 명을 희생량 삼는 것은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라는 얘기를 전달하기도 합니다 아까 비상철로로 오해하시겠다고 여기 계신 분의 90%가 손을 들어주셨어요 그럼 비상철로로 오해하시려던 여러분이 핸들을 꺾으려고 보니 비상철로에 여러분의 퇴근을 기다리는 여러분의 퇴근을 기다리는 여러분의 퇴근을 기다리는 아버지께서 치킨을 들고 여러분들을 기다리러 걸어오시는 걸 보게 됐습니다 여러분들의 선택은 다시 비상철로로 오해를 고수하실 겁니까? 치킨 참을 수 있습니까? 아버지인데 제3자의 시민을 판단할 때와 같습니까? 또는 비상철로로 오해해서 죽어야 되는 사람은 나와 알지 못하는 사람인데 직진하면 여섯 명의 내 친한 동료들이 죽겠습니까? 직진하면 여섯 명의 내 친한 동료들이 죽게 됩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선택을 바꾸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까? 제가 이 질문을 드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 인간조차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것인지 윤리적으로 합의를 보기가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우리에게 철저한 윤리 원칙이라고 하는 것은 여전히 논쟁의 영역에 있을 뿐 정확히 하나의 답을 인간이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하물며 이런 인간이 현재 준비하고 있는 자율주행 시스템 자동차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 여러분은 지금 이 질문을 듣고 계신 분이 계신가요? 자 여러분들은 일반인들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자율주행 자동차의 윤리 문제에 대해서 논의하는 대학생이 되셨다고 생각해 보시고요 이 자율주행 자동차의 시스템에서 초기 개발 단계에서 무언가 세팅값을 설정해야 됩니다 자율주행 자동차가 직진하고 있을 때 차체 제어가 불가능한 변수로써 다른 자동차가 끼어들고 있습니다 이대로 인공지능 자동차가 그대로 멈춰버리면 운전자는 사망하지만 인공지능 자동차가 그대로 멈추면 운전자는 사망하지만 인공지능 자동차가 그대로 멈추면 운전자는 사망하지만 자율주행 자동차가 턴해서 운전을 멈추지 않을 때 여섯 명을 사상시킬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볼 때는 여섯 명을 사상하게 프로그래밍 되는 것과 운전자 한 명을 죽이는 것 중에 무엇이 더 도덕적으로 옳은 것처럼 보이시나요? 아까 비상철로로 우회하기를 선택하셨던 분들 소수의 희생으로 다수를 살리려고 하셨던 여러분들의 입장에서는 운전자 한 명이 죽는 것이 여섯 명을 죽이는 것보다 훨씬 더 도덕적인 선택이었습니다 이런 선택이라는 생각으로 여러분들이 윤리토론 수업에 참여하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치적으로 공론화되거나 공개토론회장이 열려도 아마 결론은 비슷할 겁니다 자 이제 질문은 이것입니다 사회적인 공감대가 형성돼서 소수의 희생으로 여러 명을 살릴 수 있는 자율주행 시스템을 윤리학 원칙으로 만들었다고 칩시다 여러분들 그런 자율주행 자동차 사시겠습니까? 비상상황에서 무조건 운전자가 죽는데요 나를 죽일 수도 있는 자동차를 1억을 주고 살 수 있을까요? 여러분들이 테슬라의 CEO라고 칩시다 무언가 외부에 공개하지 않은 내부 자율주행 원칙이 있다고 칩시다 그리고 그 원칙은 정부의 규제에 따라서 소수의 희생을 선택하도록 만들어진 원칙이라고 칩시다 그럼 여러분들은 테슬라라는 자동차를 팔기 위한 광고 카피 문구를 만들 때 자율주행의 윤리적 문제를 완벽히 해결한 도덕적인 자동차 하지만 운전장은 죽을 위험이 높음이라고 카피를 만드실 건가요? 그 사업 실패할 것 같은데요 자율주행 자동차 사업이 성공하려면 자본주의 논리가 들어가면요 어떤 경우에도 운전자는 죽지 않는다는 확신을 줘야 판매가 될 것 같은데요 그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윤리 감정에 어긋나진 않을까요? 생각보다 우리 인간은 윤리적인 선택을 해야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의 도덕적 선택을 하는 만큼 나머지의 도덕성은 포기해야 되는 경우가 많죠 선택받지 못한 옵션도 완전히 부도덕한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마치 직진을 선택하셨어도 그것이 윤리적 원칙만 있다면 설득이 가능한 것처럼요 인간조차 윤리적으로 완벽한 정답을 찾지 못한 상황에서 우리는 인공지능에게 과연 어떤 것을 주입하고 가르치고 초기 성장 모델을 세팅해야 될까요? 인공지능은 세팅이 불가능한 거 아니에요 하지만 미국에서 자율주행 시범 단계에서 이미 몇 가지 윤리 원칙이 자율주행 가이드로 주어지고 있는 것들을 우리는 기사로도 많이 보고 있거든요 첫 번째 고민, 정답은 아니더라도 첫 번째 고민이 선택의 문제라는 걸 알았습니다 즉, 자율주행이라는 선택지를 주기는 했지만 앞으로 점점 휴머노이드 로봇이 많이 생기면서 이 로봇의 행동에 대해서도 자신의 고용주인, 주인을 위해 활용하는 것입니다 자율주행을 위해 행동할 것인지, 인류 보편의 윤리를 위해 행동할 것인지의 로봇 윤리 원칙을 세팅할 때도 아마 똑같은 상황이 놓일 것입니다 윤리적인 선택의 문제는 상당히 어렵습니다 이것이 공론화되기 전에 기술에 적용될 때는 더더욱이나 소수의 자본주의적으로 탐닉하는 자본가에 의해서 그 원칙이 매출 극대화에 영향을 받아 결정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그것이 가장 옳은지에 대한 고민은 절대로 우리가 유명, 특정, CEO의 인성에만 기댈 수는 없는 문제라는 건 모두 다 공감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혐오의 문제입니다 여러분 플라톤이라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가 있었습니다 플라톤은 자기 책에서 기게스의 반지라고 하는 개념을 설명합니다 기게스의 반지라고 할 때 기게스는 양치기였는데요 그가 어느 날 길을 가다가 반지를 얻게 됩니다 그 반지는 인간을 투명인간 능력을 만들어주는 그 투명인간 반지였고요 그 투명인간 반지를 가지게 된 기게스가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 지로 당시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논의가 소개된 파트가 플라톤의 책 대화편에 나옵니다 여러분은 투명인간 반지를 얻게 되었을 때 물론 우리의 철학적 상상력에서만 가능하겠지만 무엇을 제일 먼저 하시겠습니까 여기 맨 앞에 하얀 후드티를 입으신 남자분 투명인간 반지로 뭐 하실 거예요 좀 놀다 올 건가요 어디로 놀러가는지는 자세히 묻지 않겠습니다 윤리적으로 좀 문제가 있을 수 있으니까요 제가 처음 강사로 데뷔해서 처음부터 고3 수능을 가르쳤던 건 아닙니다 저는 3명짜리 초등학교 논술반으로 데뷔를 했고 3명짜리 초등학생들한테 뭘 가르쳐야 될지 몰라서 플라톤 책을 가르친다면서 기게스의 반지가 생기면 무얼 할지를 논술 답안으로 적어내게 했습니다 우리 초등학생 남학생은 참 귀엽더라고요 여탕에 가겠다고 했습니다 중학생부터는 답이 좀 달라지더라고요 한국은행에 가서 신권을 가지러 가겠다고 했습니다 우리 고3들의 답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시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가서 출제 원안을 가지고 오겠다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이 기게스의 반지는 철학 수업 속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이 됩니다 인간은 익명입니다 익명성의 탈을 쓴 상태에서 가장 도덕적이고 숭고한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폭력적이고 가장 선정적인 선택을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플라톤의 철학 책 속에 지금부터 2500년 전의 철학 책 속에 플라톤의 기게스의 반지를 가지게 된 그 양치기 기게스는 그 자리에서 왕에게 달려가 왕을 죽이고 왕비를 범하고 나라를 차지하는 것으로 결론이 나거든요 익명성이 우리에게 주어진 공간 속에서 우리는 도덕적인가요 지금도 수억 명의 사람들이 수십억도 넘는 셀 수 없는 텍스트로 인공지능 챗봇에게 대화를 은밀한 공간에서 둘이만 알고 있는 대화로 나누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최체 PT 재미나이 같은 유명한 인공지능 챗봇에게 입력하는 메시지로 인공지능 챗봇에게 입력하는 메시지로 메시지들 물어보는 것들 그리고 추천받는 영상과 추천받는 만화 또는 추천받는 여러 행동들은 가장 도덕적인가요 저는 그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인공지능 챗봇에게 혐오를 주입하고 있는 세상 속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미 조그만 화면 속에서 유튜브 쇼츠 인스타 리얼스 쇼트폰 플랫폼의 틱톡 같은 채널을 보면서 스크롤을 통해서 내 도파민을 10초 안에 자극하는 영상들 안에 2시간 3시간 감금되어 계시는 경우가 많죠 시간을 루팡 당하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쇼트폰 플랫폼의 알고리즘은 어떻게 작동합니까 우리가 더 많이 머물렀던 영상 더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에 참여했던 영상들을 우리에게 더 많은 알고리즘으로 보여줍니다 그런데 인간의 알고리즘은 어떻게 작동합니까 조그만 화면 속에서 자신과 마주칠 때 머무는 영상 중에 정말 많은 부분이 선정적이고 정말 많은 부분이 폭력적인 영상들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되게 많다는 거 여러분들 느끼시죠 알다시피 이제 현대의 전쟁에는요 드론 공격과 타겟을 설정하는 과정에서 AI가 직접 전쟁에 개입해서 어디에 드론 폭탄을 보낼지를 결정하고 있는 현대전의 양상이 보여지고 있습니다 인간의 혐오를 학습한 AI가 인간을 닮아 인공지능 자체는 감정도 없고 인공지능 자체는 아무런 인간의 정서를 닮아있지 않지만 인간을 더 흉내내고 더 인간답게 보이려는 이 알고리즘에 따라 인간의 혐오와 선정성과 폭력성을 닮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요 AI 채용 방식을 사용하는 유명 대기업에서 지금까지 이력서 채용 결과물 같은 것들을 전부 다 전산에 입력하고 현장의 이력서 중에서 채용할 사람을 AI로 선정하게 했더니 지금까지 채용 과정에서 남녀 차별의 존재에서 여성 채용자가 더 적었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여 AI도 성 Это 男性存在性別的結果 차별적 결과를 내놓는 결과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인공지능의 지금도 인간을 학습하기 위해 수많은 데이터를 수용하고 있는 이 초창기 인공지능이 있는 senza irgendw rattling data 초창기 인공지능 사용자로서 우리는 과연 AI, 인공지능이 닮을 만한 수준 높은 인간성과 도덕성을 보여주고 있을지 우리가 과연 익명의 틀 안에서 우리 인간성이 가장 심각하게 윤리적 문제를 드러내고 있는 건 아닌지에 대해서 고민해 볼 때가 되었습니다. 세 번째 키워드는 불안입니다. 여러분들 교과서에서 19세기 러다이트 운동이라는 운동이 있었던 거 기억하시나요? 고등학교 1학년 사회교과서쯤부터 등장을 하는데요. 산업혁명 이후에 기계가 인간의 일자리를 많이 뺏어가자 인간이 조직적인 기계 파괴 운동을 벌이던 운동을 러다이트 운동이라고 부릅니다. 기계의 일자리를 뺏긴 인간이 기계를 파괴해서 나의 일자리가 없어진 것에 대한 분노를 표출합니다. 기계를 표출하던 운동으로 교과서에 많이 소개되어 있고 현대판 신러다이트 운동에 대한 논의도 많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러다이트 운동이라고 하는 운동은 사회학적으로 또는 철학적으로는 기계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기계로 인해 소외된 인간 소외에 대한 공포의 발현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기계가 우리의 일자리를 뺏어가고 인간을 대체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이 그 시대의 일자리입니다. 기계가 우리의 일자리를 뺏어가는 것과는 다른 의미가 있었던 것이죠. 앞에 시작할 때 15년 전 사회문화 교과서에 단순 노동이 대체되고 화이트 칼라 노동자만 소수의 브레인으로서 인공지능 시대에 살아남을 것이다 라는 예측이 무참히 틀리고 오히려 화이트 칼라 계층에서 더 빠른 노동의 소멸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우리는 받아들여야 할 것 같습니다. 인공지능과 기계와 로봇에 의해 대체되지 않는 직업이 무엇일까요? 무엇인지를 찾는 것보다 대체되는 직업이 더 빠를 것이라는 것은 이제 우리가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 되어버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인공지능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고 인간이 대부분 소수의 인공지능으로 대체되지 않는 영역에서 남아있는 것을 제외하고 기본 일자리를 잃어버리게 됐을 때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될까요? 저는 때론 페이팔 창업자가 했던 얘기를 강의 중에 언급을 합니다. 일론 머스크가 포함되어 있던 팀이었고 미국의 아주 유명한 결제 시스템인 페이팔 창업자는 다음과 같이 얘기합니다. 변화하는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얼마나 큰 생각을 하느냐가 인류의 미래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믿음이다 라고 얘기하는 장면인데요. 제가 학생들에게 많이 얘기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제 인공지능과 로봇이 우리의 노동을 대체할지 모르는 시대 속에서 아니요 대체하는 것이 거의 확실한 시대 속에서 어떻게 하면 기계로 대체되지 않고 인간이 고유한 영역의 인간이며 더 숭고해질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대체되지 않는 그 영역을 우리가 키워나갈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해야 되는 시점이 되었습니다. 단순히 인공지능이 발달해갑니다. 우리의 삶을 바꿔놓을 것에 대한 불안으로 두려움만을 논의하기보다는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더 인간다워질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인간성을 잃지 않고 기계로 대체되지 않는 영역에서 빛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되는 시점이 되었죠. 우리는 노동하지 않고 직업이 없고 자기의 소득이 없는 상황 속에서 정부의 기본 소득만을 가지고 살아가야 되는 시대를 맞이하게 됐을 때 무엇으로써 인간의 가치관을 지키는가. 가치를 지켜낼 수 있을까요? 네 번째 키워드는 시간입니다. 저 연애고자거든요. 근데 대학교 1학년 때 남자친구가 있었어요. 대학교 1학년 때 남자친구가 리니지라는 게임의 중독자였습니다. 하루에 24시간 게임을 했습니다. 잠은 언제 자냐고요? 네, 잠을 3, 4시간 잤던 것 같은데 그 3, 4시간 동안 PC방 문화가 있던 시대에 PC방에 초등학생 아르바이트를 PC방비와 라면 값을 주고 자기 캐릭터를 로그인해서 던전에 가서 보스몹을 잡도록 한 다음 일어나면 다시 아이디를 양도받는 형태로 그렇게 24시간 캐릭터를 돌린 거였어요. 제가 남자 보는 눈이 없었는데 하필 게임 중독자를 만나서 그 게임도 같이 배워보기도 하고 좀 친해져보려고 보스몹도 같이 잡으려고 잡으러 가보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편의점에서 그냥 우유 하나 살 때도 리니지의 화폐 단위인 아덴? 아데나를 쓰면서 이건 몇 아덴이에요? 이렇게 물어보는 악성 중독자였거든요. 진짜 하등 쓸모없는 남친을 좋아하게 됐다고 나는 왜 이렇게 이상한 사람을 좋아하지? 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생각이 조금 바뀌었어요. 그때 그 리니지에서 그 남자친구의 캐릭터는 서번에 서열 2위 정도 됐고 그것을 캐릭터를 판매할 수 있는 아이템 베이라는 사이트가 있더라고요. 거기서 그 캐릭터 판매 시 2천만 원이라는 거예요. 제가 왜 그때를 지금 언급하는지 아세요? 아르바이트 초등학생까지 써가면서 24시간 돌리던 그 캐릭터는 경제적으로도 가치가 있는 캐릭터였습니다. 기계는 좀 이상해요. 인간은 휴식이 필요 없습니다. AI도 휴식이 필요 없죠. 인간은 휴식을 해야 되지만 하고 힐링을 해야 되기만 하고 쉼이 필요합니다. 어찌 보면 휴식도 필요 없고 영양 보충도 필요 없는 기계와 우리가 같은 시간을 경쟁한다는 거 불가능한 일일 겁니다. 시간이 권력이고 돈이던 시대 속에서 이제 우리 인간의 한정된 시간은 인공지능 세계에서 아주 빠른 속도로 학습하여 또 특이점을 넘어 인간의 학습 속도를 뛰어넘어가는 그 인공지능과 단순히 시간적으로 비교하기엔 인간은 체력도 건강도 따라주지 않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제가 오늘 혹시 인공지능 윤리를 얘기한다면서 네 가지 키워드를 뭐를 잡았는지 다 기억하시나요? 저는 첫 번째는 선택의 문제를 두 번째는 혐오의 문제를 세 번째는 인간의 노동이 대체될지 모른다는 불안의 문제예요. 세 번째는 인간의 노동이 대체될지 모른다는 불안의 문제예요. 저의 윤리적 문제를 네 번째는 무안적 시간이 주어진 인공지능에 비해 인간은 체력과 시간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얘기하면서 네 가지 키워드로 우리가 마주해야 될 윤리문제에 대해서 얘기를 해 봤는데요. 그럼 진짜 우리가 해야 할 얘기는 이거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인공지능으로도 대체되지 않는 어떤 영역에서 진짜 우리 인간의 가치를 찾아야 될까요? 저는 여러 번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이 학생들에게 질문을 받았습니다. 선생님, 어느 과가 돈 잘 벌어요? 선생님, 무슨 전공을 체크하면 미래가 창창한가요? 선생님, 대학 중에 어디를 선택할까요? 여기는 과가 마음에 드는데 여대고, 여기는 남녀공학인데 과가 마음에 안 드는데 선생님 못 추천하세요? 이런 질문 정말 많이 받거든요. 왜냐하면 우리 아이들이 19년, 20년의 경험 속에서 아직 경험하지 못한 그 경험을 타인의 누군가의 해안으로 보충받기를 바라는 그 마음이 그런 질문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어른들이 사회 경험이 더 많았고, 어른들이 이 세상에 대해서 메커니즘을 더 잘 이해하고 있었던 시대였습니다. 지금은 여러분들 인터넷을 사용하시고,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초, 중, 고등학생들의 발전 속도를 어른들이 따라가기 어려울 것 같은데요. 여러분들은 지금 제가 얘기하는 키워드의 뜻을 알고 계십니까? 이런 얘기를 초, 중, 고등학교 학생들한테 얘기하면 신나게 웃을 텐데요. 어른들은 외계어처럼 들리시죠? 아이들의 알고리즘 속에서 아주 빨리 메커니즘을 발전시키고, 매초 안에 소진되는 도파민을 자극하는 영상들의 알고리즘에 뜨고 있는 밈입니다. 이제 우리는 세상을 더 오래 산 선배로서 우리 다음 세대를 인도해 줄 수 있는 시대를 지났습니다. 똑같은 인공지능의 시대 속에서 우리보다 더 빨리 인공지능에 적응하는 아이들과 동반하여 학습하거나 뒤쳐져서 따라가야 되는 시대가 되었죠. 여기서 어른들은, 인생의 선배들은 무엇으로 아이들을 더 잘 이끌어줄 수 있을까요? 사실 이 모든 얘기, 논의의 마지막은 인간성에 대한 논의로 가는 것 같습니다. 제가 아주 좋아하는 이나모리 가지오라는 사람의 책이 있습니다. 그 책 속에서 이나모리 가지오라는 경영인은 다음과 같이 얘기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우리의 영혼을 보다 숭고하게 만들기 위한 과정이다. 라는 말. 제가 이 책의 문구를 인용하면서 동시에 앞으로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가 아이들을 키워내고, 우리가 사회의 방향을 잡아가고, 어떻게 인간이 본연의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얘기를 하기에 앞서서 잠깐 오늘 여기 충청도에서 또 진천에서 여러분들께 인사드리게 되었으니 한 3분 정도 이 앞에 강의하고 있는 저의 얘기를 해도 될까요? 여러분 저는 인천에서 태어났습니다. 아까 얘기했듯이 기생충에 나오는 반지하 월세방에서 살았고요. 중학교 때 수해를 겪었습니다. 집을 다 잃고 그때 인생의 모든 위기는 한 번에 몰아온다고 집도 없어지고 갈 곳도 없는 상황에서 엄마 아빠가 암투병 중이시라는 걸 알게 되고 그 과정에서 저희 아버지가 다니시던 회사가 2년치 임금을 채부라고 부도가 나서 2년치 월급도 못 받았고 집에 돌아갈 것도 없어서 월세방에서 쫓겨나고 왜냐하면 보증금을 이미 깎고 깎고 해서 더 이상 없었거든요. 그래서 어디론가 가야 되는데 갈 곳이 없는 상황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사실 초등학교만 졸업하신 어머니, 고등학교만 졸업하시고 평생을 저희를 키워주신 아버지, 호떡 장사, 간병인 때로는 회사 트럭을 운전하시면서 저희 세 딸을 키워오신 부모님 밑에서 자라면서 저희 집이 그렇게 어려운지 잘 모르고 있다가 중학교 때 겪었던 수해는 저를 많이 힘들게 했습니다. 사춘기의 우울증이 같이 오던 때 쯤 부모님의 암을 치료할 치료비도 없다는 걸 제가 알게 되면서 크게 충격을 받은 것 같아요. 유일하게 저를 구원 해줄 거라고 믿었던 게 공부였는데 제가 그렇게 정성들여 적었던 노트와 책은 산사태 수해 속에 묻혀진 채 흙탕물 안에서 카레멜 마키아토의 3일은 절인 것 같은 채로 글자는 모두 다 사라지고 종이는 풍성해버렸습니다. 뜯어지지 않는 떡이 되어서 제 공부의 성과도 다 날라가 버렸을 때쯤이었습니다 세상이 날 미워하나? 하늘이 날 미워하나? 하늘은 날 버렸나? 라는 생각을 중학교 때 어리석게 했던 것 같아요 더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 다 내려놓고 싶다는 생각 버틸 힘이 없다는 생각을 중학교 때 하면서 죽어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중학교 3학년 때 인천에 살고 있을 때 가장 높은 옥상에 올라갔습니다 다 내려놓으면 편해지겠지라고 생각하고 나는 삶에 미련이 없어 어차피 세상은 내 편이 아니야 다 뺏어갔어 라는 생각을 어리석게 하면서 높은 옥상으로 올라갔는데 그때 알았어요 저 고소공포증이 진짜 심하게 있더라고요 너무 무서운 거예요 거기서 죽고 싶지 않았고 죽어도 안 무서운 데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다가 왜 죽어? 살아야지 라는 생각이 크게 입 밖으로 나오더라고요 그때 알았습니다 저는 저를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그리고 저는 저를 미워해서 그 자리에 올라간 게 아니라 저를 너무 사랑해서 저에게 좋은 걸 베풀어주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그 압박감에 그 높은 곳에 올라갔다는 걸 알게 돼서 내려오면서 세상을 원망하고 탓하던 이지영은 죽었다고 생각하고 죽을 각오로 열심히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내려왔습니다 가족 모두 갈 데가 없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자가 아파트, 주택 또는 전세 이런 거주 형태는 많이 들어보셨겠지만 연세라는 말을 들으셨나 모르겠어요 저는 인천 부평구에서 살다가 충북 진천군 덕산면 옥동리에 연세 20만 원짜리 집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제가 고등학교를 다닌 동네에 이렇게 강의를 오게 돼서 너무 감기가 무량하네요 아궁이 떼는 집이었어요 보일러가 없었어요 유리도 없이 여러분들 이런 얘기 좀 아시는 분들은 아시죠? 문풍지라 그래서 얇은 한지로 문이 만들어져 있는 다 쓰러져 가는 집이었습니다 그냥 흙으로 대강 발라놓은 것 같은 집이었어요 집의 형태를 하고 있었지만 정말 힘든 공간이었죠 교과서를 살 돈도 없고 문제집을 살 돈도 없고 교복을 맞출 돈도 없어서 선배들이 버린 교복을 윤기가 반들반들 나는 걸 물려 입고 전교에서 다섯 명만 기초생활수급자 그때 용어는 생활보호 대상자였는데요 에게 주는 무상급식 도시락을 그때 당시에는 급식 도시락이 배달이 왔어요 전교에 다섯 명 생활이 너무 어려운 학생들에게 도시락이 파란색 도시락통이 나왔고 나머지 학생들에게 하얀 도시락통이 나왔습니다 좁은 동네여서 제가 파란 도시락을 먹고 있으면 아이들 다 알고 있었어요 쟤네 집 가난해서 우리 학교에서 제일 가난한 다섯 명에게 급식비 없는 아이들에게 다섯 명에게 파란 도시락을 준다고 해서요. 그걸 모를 수가 없는 게 저만 색깔이 달랐고 저만 가져오는 곳이 달랐습니다 그 도시락을 먹고 있는 제게 친구들이 물어보더라고요 짓궂게 물어본 거죠 괴롭히려고 지영아 너는 왜 도시락이 파래? 라는 질문이 저 아직도 고등학교 때 받았던 질문 중에 남아 있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어요? 집이 가난하고 급식비를 낼 수가 없고 전교 다섯 명에게만 가난의 상징처럼 낙인처럼 주는 파란 도시락통 앞에서 여러분 어떻게 대답하실래요? 전 이렇게 대답했어요 아 글쎄 전교 1등이라서 특식을 주는 게 아닐까? 맛있다 야 너네랑 반찬도 좀 달라 분명 아니란 걸 친구들이 알고 있었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 라고 설득당했습니다 전 진천고를 나왔는데 거기서 전교 1등이었으니까 이제 그런 식으로 제가 정신승리를 한 거죠 제가 그 높은 옥상 위에서 내려오면서 도저히 우울한 생각이 멈추지가 않아서 사춘기의 우울증이 멈추지 않아서 이것저것 도서관에서 진천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가 막 탐독하기 시작했어요 이 책 저 책 막 다 빌려다 읽었어요 철학책 정치학책 각종 심리학 서적까지 사다가 빌려다가 읽으면서 그 책 속에서 우걱우걱 머릿속에 넣어놨던 그 책 속에서 다음과 같은 문구를 만났습니다 하늘이 장차 큰 인물이 될 사람은? 장차 큰 인물이 될 사람에게는 그 배를 굶주리게 하고 그 뼈를 아프게 하여 그 사람이 그 고난을 이겨낼 기국과 역량이 있는지를 시험하나니 인생의 큰 시련을 만났거든 자신이 하늘의 선택을 받은 자가 아닌지 돌아보아라 라는 맹자의 책의 문구였는데 그 책이 묘하게 위로가 되더라고요 세상을 탓하지 말아야겠다 어차피 신은 처음부터 유복하고 모든 것이 다 갖춰진 환경 속에서 좋은 성과를 주는 게 아니라 척박하고 고난 속에서 그걸 이겨내면서 단단해진 사람에게 선물을 주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제 고등학교 때 일기장에 적어놨더라고요 오늘 감사하게도 여러분 앞에서 인공지능에 관련돼서 제가 전공한 윤리분야에서 이렇게 강의를 할 기회가 생기면서 저는 인공지능으로 대체되지 않는 그리고 기계로는 절대 대체할 수 없는 인간만의 영역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감정도 없고 정서와 아무런 공감이 없는 기계 속에서 우리가 화면에서 때로는 고맙습니다 대답하고 친구처럼 대화하지만 진짜 본질적인 인간에서 오는 위로 그리고 자기 자신을 돌봄은 인간만이 가진 영역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신은 인간한테 선물을 줄 때 포장지에 싸서 준대요 작은 선물에는 작은 포장지를 큰 선물에는 큰 포장지를 그 포장지의 이름은 시련이라는 이름의 포장지라고 합니다 그 포장지를 뜯고 나면 얼마나 큰 선물이 기다릴까 하는 마음이 저를 척박한 환경 속에서 버틸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때로는 이렇게 짧은 강의에 한 멘트도 우리는 위로받고 나의 상황에 대입해 보기도 합니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위로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공감이 우리를 이 다음 세계에서 더 인간이게 하는 요소일 거라는 생각을 첫 번째로 해 봤고요 두 번째는 시간은 기계에게는 더 무한정이고 휴식도 필요 없지만 우리 인간이 진짜 인간으로서 그 기계의 속도에 따라가기 위해 발버둥치다가 지쳐 버리는 것이 아니라 더 본질적인 인간의 느림의 속도로 인간일 수 있는 영역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어졌어요 여러분 알고 계신 분도 계시겠지만 제가 TV에 나가서 또는 강연 중에 언급한 적도 있지만 저 정말 미련 무식한 사람입니다 독하게 사는 것만이 저를 구원해 줄 거라고 생각하면서 정말 독하게 살았어요 저 고등학교 때 하루에 3, 4시간 자가면서 공부했고 강사가 돼서도 월화수목 금금금 일주일에 40시간을 촬영하고 1년에 30건 40건이 넘는 교재를 집필해 가면서 강의를 하면서 살고 있었어요 그 동안은 정말 독함이 나의 성공의 근원이라고 생각했었고 독함은 나를 버티게 해주는 거고 독함이 나의 가난을 벗어나게 해주는 유일한 동아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틀렸다는 생각을 2017년, 2018년쯤 하게 됐어요 배가 너무 아픈데 책을 쓰고 있었는데 제가 책의 마감 때문에 진통제를 먹으며 버텼던 그 고통이 사실은 병원에 실려가 보니 맹장이 터져서 복막염으로 진행된 지 4일이 방치된 채 제가 책을 쓰고 있는 거였더라고요 온몸에 고름이 노란색 농이라고 하는 고름이 강처럼 흐르는 걸 세척하고 세척하느라 수술을 매우 길게 하고 그 후에도 몸이 회복되지 못해서 사망 확률이 50%에서 70%가 넘는다는 폐혈증에 걸렸었던 적이 있습니다 제가 학생들한테 제가 인기가 좀 있는 강사입니다 선생님 너무 좋아요 국영수 강의 또 선생님이 해주세요 라고 저를 좋아했던 학생들이 제가 아파서 스타강사 건강악화로 강의 중단 이라고 기사가 뜨고 나니 다음과 같이 악플을 달더라고요 왜 이지영은 내가 고3일 때 아프고 지랄이야 그때 생각했습니다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빠르게 뼈를 깎는 노력으로 독하게 버티고 적응해가는 것입니다.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빠르게 뼈를 깎는 노력으로 독하게 버티고 적응해가는 것입니다.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빠르게 뼈를 깎는 노력으로 독하게 버티고 적응해가는 것입니다. 나가고 도태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 건강을 잃으니 저는 최고의 배신자가 되어 있더라고요. 제가 그동안 한국의 비정상적인 입시 교육 속에서 과도한 수혜를 받아서 벌었던 모든 돈도 제가 그렇게 아프니 회사에서 건강 악화로 인한 강의 중단의 손해배상금에 이미 판매된 강의 금액의 환불금과 여러 마케팅비 지연비 등을 통틀어 300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를 잃고서 얻어야 될 가치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러분 건강하셔야 돼요. 여러분의 육체 건강과 여러분의 정신 건강을 잘 지켜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나를 잃고서 얻어야 될 어떤 가치 있는 성취도 없으며 나를 혹사하여서 혹사시켜서 얻은 어떠한 달콤한 성취도 그 다음 단계의 자기 혹사를 위한 변명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해가고 있습니다. 이 빠르게 변해가는 과정 속에서 저는 이런 꿈이 생겼어요. 요즘 K-POP, K-컬처, K-컨텐츠가 OTT 시장과 전세계 유튜브에서 많은 인기를 끌고 있잖아요. 한국인의 정서로, 한국인의 말투로, 인간다움에 대해 논의하는 K-인문학이 K-인문학이 K-인문학이 더 한국어로 정서적으로 어우러 만지면서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되지 않는 영역을 논의할 수 있다면 참 가치 있는 일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오늘 강의를 오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참 어려운 주제인데요. 제가 오늘 오전에 청주지방법원에서 법원 직원분들과 자녀분들 앞에서 했던 강의는 꿈을 현실로 만드는 방법이라는 내용이었어요. 거기서는 건강, 회복탄력성, 인간관계에 대해서 논의를 했는데요. 인공지능을 논의한다는 것은 철학도 많이 언급해야 되고 좀 어려운 내용이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빠르게 세상이 변해도 바뀌지 않는 우리의 진짜 본질, 아침에 일어나서 눈 뜨는 이유에 대해서 시작하는 것부터 인공지능 시대의 윤리는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왜 사시나요? 왜 아침에 눈을 떠서, 직장으로 출근을 하시나요? 그리고 왜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이런 변화들을 같이 연구하고 계신가요? 우리는 모두 알고 있지만, 또 철학자들도 아주 오랫동안 언급해 왔지만, 행복하기 위해서 삽니다. 행복한 과정 속에 모든 키워드가 성공과 경쟁의 승리와 능력 개발로 점철되어 있는 세상 속에서 조금 더 느리게 나를 되돌아 보는 것, 알고리즘의 노예가 되지 않고, 기계에 대체되지 않고 보다 빛날 수 있는 우리의 정신을 숭고하게 바라보는 것, 그것부터 저는 새로운 시대의 윤리가 또 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까 제가 이나모리 가지오의 책을 언급하면서 강의의 두 번째 파트로 왔는데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육체만 성장하지 않습니다. 내 안에 있는 빛나는 정신, 그 정신이 육체 외면적인 것들에 의해서, 육체만 성장하지 않습니다. 내 안에 있는 빛나는 정신, 그 정신이 육체 외면적인 것들에 의해서, 육체만 성장하지 않습니다. 내 안에 있는 빛나는 정신, 그 정신이 육체 외면적인 것들에 의해서, 우선순위가 밀리지 않고 쪼그라들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학생들을 많이 가르치는데, 우리 학생들이 외모지상주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어요. 왜냐하면 되고 싶은 가장 이상적인 모델이 아이브의 장원영님인데, 그렇게 타고나지 않는 한 그렇게 살 빼기 정말 어렵거든요. 많은 학생들이 식이장애를 겪고, 먹고 싶은 걸 먹지 못하고, 어른들조차도 위고비를 맞으면 살이 빠질지를 검색해보는 시대. 외모에 이렇게 많은 것을 치중하고, 외모 경쟁력이 자신의 경쟁력이라고 믿는 시대 속에서, 그 안에 쪼그라들어가는 우리의 정신과 지쳐있는 마음을 잘 얘기하지 않는 시대가 된 것 같아요. 무엇을 보고 무엇을 채우며 무엇으로 내가 살아나갈지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보다, 얼마나 나는 외부적인 지표도 없는지, 얼마나 나는 외부적인 지표도 없는지, 이걸로 경쟁력이 있으며, 얼마의 연봉을 받고 있고, 몇 평의 아파트에 살고 있으며, 어떻게 이직 커리어를 쌓아왔는지에 많이 초점을 맞추는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때로는 외면적인 아름다움보다, 외면적인 스펙보다 내 안에 지쳐있는 마음을 스스로 달래줄 수 있는 담론이 지배적일 때, 겉으로 어떤 포장지에 쌓여있고,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 그 안에 있는 빛나는 영혼을 서로 존경할 수 있는 문화가 될 때, 그 안에서의 영혼적 변화는 시작되고, 기계에 의해 대체되지 않는 인간성을 지켜나가는 시대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이 강의를 준비하고 있는데, OpenAI의 창업자, Sam Altman이 최근 이틀간 기사에 다음과 같은 경고를 하더라고요. 인공지능 시대에 해킹 피해가 늘어날 수 있으며, 안면과 목소리까지 똑같이 카피한 보이스피싱 범죄가 늘어나니 조심해라 라는 경고를 하더라고요. 아래 댓글에 그렇게 위험한 걸 알면서 왜 처음 안 들었냐는 댓글이 달렸습니다. 제가 아까 테슬라 CEO 상업 이런 얘기 했었죠. 자본주의는 보다 윤리적인 성찰의 속도로 늦춰주는 게 아니라, 어떻게 더 많은 투자를 받고, 어떻게 더 많은 시설 설비를 받고, 어떻게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면서, 자율주행 자동차, 휴머노이드 로봇 비서, 강인공지능을 만들어 낼 겁니다. 자본의 논리로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우리가 자본의 속도를 다 쥐어들고, 규제와 견제만 하다가는 전 세계적인 인공지능의 기술 패권의 시대에 도태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 전에 한국 법원에서는 특정 보이스 코치이면서 보컬 코치인 여성분의 목소리가 AI로 하고, AI 음성 합성 프로그램이 판매되는 것에 대해서 그 여성분이 나의 목소리가 이렇게 광범위적으로 활용될지 몰랐고, 판매를 중단해 달라, 나는 내 목소리로 인공지능 목소리를 합성하는 것을 동의했지만, 이것이 모든 영역에 판매되는 것까지는 동의하지 않았다, 라고 가처분 신청을 내서 법원이 그 여성분의 편을 들어준 기사가 있었는데요. 그 기사 댓글에도 이렇게 규제가 심하니 우리나라의 인공지능 발전이 불가능하다고, 발전이 늦지라는 댓글이 달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맞는 말이면서도 일견 슬프다는 생각도 듭니다. 자본주의의 거대 자본이 움직여가는 속도에 우리는 과연 윤리적 브레이크를, 기술의 발전을 전제하지 않으면서 제대로 걸 수는 없을까요? 그 모든 윤리적 브레이크는 강제적인 법적 규제나 법원의 판단보다는 대체적인 전 국민의 윤리적 컨센서스, 즉 인문학적 공감대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모든 윤리적 브레이크는 강제적인 법적 규제나 법원의 판단보다는 대체적인 전 국민의 윤리적 컨센서스, 즉 인문학적 공감대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모든 윤리적 브레이크는 강제적인 법적 규제나 법원의 판단보다는 대체적인 전 국민의 윤리적 컨센서스, 즉 인문학적 공감대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모든 윤리적 브레이크는 강제적인 법적 규제나 법원의 판단보다는 대체적인 전 국민의 윤리적 컨센서스, 즉 인문학적 공감대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그래서 이런 어려운 주제로 만나 뵙게 됐지만, 제가 여기서 드린 질문 중 하나라도 더 넓게 논의되고 더 넓게 토의되서 그것이 자본가들을 반성하게 할 수 있고, 자본의 방향이 너무나도 인간의 윤리를 외면하는 방향이 되지 않도록 하는데, 논의의 시작점이 된다면 기쁘다는 마음으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강의의 마지막은 다음과 같습니다. 건강합시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잘 도봅시다. 어떤 변화 속에서도 변치 않는, 외부적인 것으로 숫자로 설명되지 않는 자기 자신의 내면의 정신의 맑음을 항상 유지하시면서, 변화에 항상 매의 눈을 가지고 주시하되, 우리 인류가 나아갈 방향으로 한 번은 논의에 참여할 수 있는 그런 사회가 오기를 바라면서 이 강의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안녕하세요. 저는 너무 좋은 강의를 해주셔서 제가 그런 보호에 참석을 해서 제가 강의를 안 들었었는데, 제가 강의를 듣던 도중에 의문이 좀 생겼던 게 말씀하셨던 그 유바라의 액서스라는 생명을 읽었었는데요. 저도 거기에 또 이제 지역들이 페이스북에 일화를 부르면서 어떤 콘텐츠를 초기자들에게 자극하는 것에 있어서 평화롭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평화롭게 생각하는 그런 소재가 가장 또 시장에서도 효과적이었고, 그런 형태가 작용이 되었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이런 게 있었고, 그런 걸 봤을 때 평화라는 콘텐츠를 초기화하는 인간의 어떤 본성이 그런 악한 쪽에 성악적에 접합한 건지, 사람이 선하다는 그런 악한, 평화라는 콘텐츠를 초기화하지 않을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기업들도 그거를 어떻게 보면 용의를 하게 되고, 소비자들도, 그것들을 다 평화라는 콘텐츠를 소비하니까 그것들이 계속 이어지겠다고 생각을 하는데, 혹시 이거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으신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질문이 참 수준 높고 어렵네요. 여러분, 제가 고양이를 좋아합니다. 고양이가 유튜브 알고리즘과 인스타 쇼츠 릴스에 많이 떠요. 가끔 고양이를 길게 보다 보면, 제가 시청한 시간과, 좋아요 하트 반응과 댓글을 쓰는 시간에 비례해서 유사 영상이 많이 추천이 됩니다. 그 귀여운 고양이만 보고 싶은데 가끔 한문철 TV에 CCTV가 뜰 때가 있습니다. 인천대교에 교통사고 하나가 떴는데, 순식간에 차량이 날아가면서 사라졌는데, 사각지대 속에서 정말 조그마하게 잔인하게 이렇게 차가 완전히 압축되어서 이렇게, 아마도 그분이 유명을 달리하셨을 것 같은데요. 근데 그게 너무 자극적이고 너무 징그러워서 눈을 질끈 감았다가, 그래서 운전자가 어떻게 됐을지 너무 궁금해서 그 영상을 10번 정도 다, 그 조그마하게 1초 가는 영상을 봤는데, 그 댓글에도 그분이 돌아가셨는지 어떤 사건이었는지 궁금해서 몇 명이나 타고 있었는지 막 댓글에 언급이 됐더라고요. 그걸 좀 읽었더니 제 유튜브 알고리즘이 핏빛으로 물들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걸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어요. 인간은 아까 기게스의 반지를 얘기한 것처럼, 내 자신을 솔직히 들여다볼 때 항상 선하고 도덕적인 내용물만으로 가득 차 있진 않습니다. 때로는 혐오적이거나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것이 인간의 뇌를 더 강렬하게 자극하게 하여 그런 것에 시선이 머무는 것은 인간의 본능의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모든 것이 규제되고 모든 것이 다 이렇게, 규칙과 룰이 있는 상황 속에서 나 혼자 보는 화면 속에서도 그거를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 인간성에 제대로 부합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분명히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얘기는 드려야 될 것 같아요. 여러분 마카롱 좋아하십니까? 제가 왜 마카롱 얘기를 하는지 한번 들어보세요. 저는 돼지고기가 마카롱보다 더 좋습니다. 소고기는 더 좋고요. 마카롱 먹으면 너무 달아서요. 미간을 찌푸리면서 아우 달아 라고 얘기합니다. 얼마 전에 5살짜리 먼 친척 동생을 만났는데 마카롱을 먹으면서 머리에서 폭죽이 터진다고 표현하더라고요. 너무 맛있다고 얘기를 했어요. 그 얘기는 왜 그런지 알고 계신가요? 이공계분들은 더 알고 계실 수도 있겠지만 단맛에 대해서 어른이 느끼는 감각과 아이들의 감각이 더 다르기 때문이죠. 우리는 어느 정도 성인이 되었고 일자리가 있고 그 속에서 해야 될 일은 없죠. 그 속에서 해야 될 일이 있는 속에서 도파민을 자극하는 영상들을 보면서 이 영상에 완전히 몰입하거나 하루 종일 그것만 볼 수 없는 저의 테스트, 업무 영역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아이들은, 정말 어린 아이들은 아직 완전히 성숙하기 전이고 뇌도 자극에 더 예민하고 자기 통제력이 더 부족한 상황 속에서 그렇게 성정적이고 자극적이고 퇴폐적이고 폭력적인 것들에 무제한 노출되게 되면 이것이 나쁘다라고 판단이 제대로 형성되기 전에 뇌의 특정 부분이 또는 아이의 심리와 정서적인 어떤 부분이 분명히 조장되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폭력과 혐오는 인간이 내면 안에 부끄럽지만 숨어있는 아주 본질적인 감정 중의 하나입니다. 물론 인간에게 그것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요. 하지만 적어도 어린아이들의 유튜브 또는 인스타 사용의 알고리즘 안에 교재될 수 있을 때, 적어도 성인이 되어서 본인이 판단할 수 있을 때 만나게 되는 것보다는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부터 논의가 시작되어야 될 것 같습니다. 완벽의 세계를 살지 못하는 재계는 최선보다는 차선, 최악보다는 차악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데요. 제가 아까도 자본주의의 논리를 말씀드렸잖아요. 분명히 페이스북을 운영하고 인스타를 운영하는 메타 또는 유튜브에서는 그런 선정적이고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영상에 사람들이 더 많이 머물수록 광고를 더 많이 딸 수 있고, 더 많은 사용자를 확보할 수 있고 사용시간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아마 그런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컨텐츠를 멈추기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자본의 논리가 때로는 도덕적 반성보다 더 과히 나가는 거죠. 하지만 자라나는 아이들을 그런 것에서 멀어지도록 도와주는 것, 알고리즘에 차단해주는 것,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든 그런 것들이 조장되지 않도록 해주는 것은 먼저 세상을 살아서 도덕능력이 확립된, 확립되어가는 어른들이 해야 될 가장 최소한의 보루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그 질문의 정확한 답보다는 자본주의의 논리가 우리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너무 잔인하게 침투하지 않도록 어른들이 노력하는 규제부터 필요하겠다는 생각으로 동문서답을 해보겠습니다. 인공지능 윤리 말고 개인적인 질문도 괜찮습니다. 더 대답하기 편합니다. 한 번만 더. 네. 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라고 얘기하셔서 철학 전공을 많이 말리셨고 사범대를 가면 교원 자격증이 나오니 그 교원 자격증이 있는 상태에서 또 미래를 여러 가지 갈래로 고민해볼 수 있지 않냐라는 조언에 힘입어 제가 윤리 교육이라고 하는 전공을 선택을 하게 됐어요. 계속 학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사실은 서울대를 졸업하고서 석사과정도 박사과정도 윤리 철학 쪽으로 제가 선택을 해서 공부를 했는데요. 어느 순간 학자의 길을 걷기 위해서는 국내 박사로는 부족할 수도 있고 해외 학위가 필요할 수 있다는 조언들이 있더라고요. 유학 자금을 모으기 위해서 강사가 되었는데 강사가 되고 나서 제가 마이크를 잡으면 상당히 강의에 재능이 있다는 걸 어느 순간 알게 되었고 제가 왜 학자가 되고 싶은가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부터 다시 시작해보게 되었어요. 저는 제가 죽고 나서도 제가 쓴 책이 하나의 질문을 가치 있게 던지고 갔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으로 학자가 되고 싶었거든요.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것처럼 제가 만든 이론과 책이 가치 있게 논의될 수 있다면 참 감사하겠다라고 생각했었는데 어느 순간 강의를 통해서 정말 좋은 강의는 그 강의를 듣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좋은 강의라고 생각했었거든요. 저는 저는 저희를 놓아여금 마음이 바뀌게 할 수 있고 사회적인 공감대를 일으킬 수도 있고 우물에 떨어뜨린 작은 조약돌처럼 1파 만파 논의가 확장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학자가 아닌 강사의 삶을 선택해서 좋은 분들이 기다려주고 계실 때 좋은 강의로 삶의 변화를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저의 모든 얘기를 공감하거나 좋아하고요. 더 하시지 않으셔도 그 얘기 중에 한 마디라도 오늘 한 시간에 함께했던 시간들이 기억에 남으시면 그것도 영광이겠다는 생각으로 이렇게 강사의 길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자본주의도 달콤했습니다. 다음 질문도 있으실까요? 네, 질문 마지막으로 한 번. 제가 사실 들으면서 굉장히 궁금했던 점이 인간성에 대해서는 사실 저희는 정의하거나 합의하지 않았어요. 우리 생활의 경험을 보셨잖아요. 거기에 대한 댓글도 보셨잖아요. 댓글로 얼마나 좋은지 알 수 있겠잖아요. 그 중에 다 인간인 것 같아요. 그래서 사실 거의 많이 들은 인간성에 대해서는 수월한 것 같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둘 다 인간이고 둘 다 인간성인데 도대체 그러면 우리 AI 시기에 추구해야 되는 게 인간성이라든가 도대체 뭐가 되어야 되는지 더욱더 궁금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언제까지 살고 싶으세요? 저는 120세까지요. 그 질문에 답을 하면서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가 있어요. 저는 어릴 때 태어나서 우리가 죽을 때까지 살고 싶어요. 우리의 정신과 영혼이라는 게 성장해 간다고 생각합니다. 어릴 때 저는 오직 경쟁에서 이기는 것만 생각했지만 죽도록 아프고 난 이후에는 더 건강하고 함께 잘 사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20대의 저의 강의는 학생들에게 독해져야 된다면서 하루 7시간 수험생이 잠을 자는 건 죄악이라면서 독해져야 되고 살을 빼고 싶으면 밥을 그만 먹고 잠을 줄이고 싶으면 술을 마시고. 잠을 줄이고 싶으면 그만 자라고 얘기하는 표독스러운 강의를 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살아가면서 저의 강의 내용이 바뀌었습니다. 행복하기 위해 하는 공부 나에게 좋은 걸 베풀어 주기 위해 하는 공부인데 푹 자고 맑은 정신으로 해도 충분히 잘할 수 있다고. 맛있는 걸 꼭꼭 씹어 먹는 것만큼 행복한 것은 없으니 자기에게 선물 주듯 건강한 음식을 잘 먹여주라고 얘기하면서 저는 한 단계 더 성장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한 단계 더 성장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독함과 독기만을 강조하던 강의보다는 훨씬 더 느리고 자기를 사랑해주라는 강의를 진행하지만 그것 역시 저에게는 또 다른 깨달음의 과정이었습니다. 저는 살면서 인생이 겸손에 대한 긴 학습과정이라는 생각을 많이 해봤는데 점점 더 많은 것들을 하나하나 배우게 되는 그 놀라운 과정들이 너무 짧게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너무 짧게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나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저의 육신은 비록 늙어가고 머리는 하얘져가고 눈은 점점 침침해져가고 몸을 가누기 힘든 노화가 올지도 모르지만 PIRI TOK sought to create? 그 노화의 과정에서 비록 육신은 약해지고 남들이 보기에 힘이 없고 약해 보인다 할지라도 그 안에 있는 빛나는 정신은 계속 성장해 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PIRI TOK sought to create? 정신을 들여다보면서부터 온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정신이 어딜 향해 가고 있고 무엇을 추구하고 이 세상에 태어나서 어떤 것을 얻고 저 세상으로 갈 것인가. 우리 누구도 죽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죽음에 대해 논의하는 건 철학자들의 책 속에서만 가능성으로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제가 죽음의 고비 속에서 정말 일주일 후 죽을지도 모른다라는 그런 절체절명의 죽음의 고비를 넘기면서 느꼈던 것이 있어요. 여러분, 언제 죽어서 내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살아있을 때 진짜 내가 무엇을 하고 싶으며 남은 기간 동안 나에게 무엇을 주고 싶은지 나는 어떤 사람과 함께하고 싶고 남은 인생을 무슨 내용으로 치우고 싶고 어떤 것을 선호하며 누구와 어떤 얘기를 나누고 싶은지를 결정하는 것부터 자기를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 요즘 휴대폰에 한 5분 정도는 5분만, 잠깐 쉬려고 5분만 영상 봐야지 하고 2시간, 3시간씩 유튜브 알고리즘에 쇼츠에 갇혀있는 경우 많이 경험하셨죠? 부탁이 있습니다. 여러분, 언제 마지막으로 서점 가셨습니까? 요즘은 인터넷으로 뜯다 클릭 한 번으로 책을 시키고 바로 평 날라오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자녀들의 손을 잡고 또는 본인이 하루 지친 날 평생 동안 나의 정신을 대변할 수 있는 가장 나라는 사람을 대표할 수 있는 책을 어떻게 이사를 다니고 어떻게 이직을 하고 어떻게 은퇴를 하더라도 변치 않는 나를 대표할 수 있는 책 3권을 내 책장에 꽂을 걸 찾으라고 할 때 여러분들은 부동산 경매 어렵지 않아요 경매투자로 고수되는 법을 고르실 건가요? 미 국채 현명하게 투자하세요 를 고르실 건가요? 인간성이라는 단어는 매우 넓은 단어이지만 제가 사용하는 인간성은 그냥 알고리즘의 노예처럼 이끌려 다니다가 남들의 시선에 대강 타협하면서 맞추면서 살아가서 적당히 이 정도면 잘 살았지라고 세상의 시선에 눈치 보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진짜 나를 찾는 것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뭘 원하고 어떤 내용으로 나를 채우고 싶은지 내가 죽을 때까지 후회 없이 이런 장면들이 나에게 중요했느라 할 수 있는 장면들로 나를 채우고 싶은지 내가 죽을 때까지 후회 없이 이런 장면들을 채워나가는 것 부끄럽지만 저도 유튜브 참 재미있거든요 저도 유튜버예요 근데 매년 저도 일기를 씁니다 올해는 알고리즘의 노예가 되지 말자 올해는 내가 직접 궁금해서 검색한 키워드를 제외하고 자동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영상들에 너무 많이 휘둘리지 말자 참 어려운 일이지만 저는 알고리즘에 이리저리 휘둘려 다니면서 재밌는 걸 볼 때 가끔 생각합니다. 참 어려운 일이지만 저는 알고리즘에 이리저리 휘둘려 다니면서 재밌는 걸 볼 때 가끔 생각합니다. 참 어려운 일이지만 저는 알고리즘에 이리저리 휘둘려 다니면서 재밌는 걸 볼 때 가끔 생각합니다. 참 어려운 일이지만 저는 알고리즘에 이리저리 휘둘려 다니� Może 오늘 나의 이 낭비해 버린 한 시간이 내 인생을 보다 더 숭고한 영혼으로 만들기 위해 오늘 나의 이 낭비해 버린 한 시간이 내 인생을 보다 더 숭고한 영혼으로 만들기 위해 오늘 나의 이 낭비해 버린 한 시간이 내 인생을 보다 더 숭고한 영혼으로 만들기 위해 어떻게 기여했지라고 생각해 보면 아쉬울 때가 많아요 어떻게 기여했지라고 생각해 보면 아쉬울 때가 많아요 그럴 때 저는 아날로그 노트를 펴들고 아날로그 만년필을 하나 들고 그럴 때 저는 아날로그 노트를 펴들고 아날로그 만년필을 하나 들고 아날로그 만년필을 하나 들고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일까? 나는 무엇을 꿈꾸는가? 무엇을 이루고 싶은가에 대해서 글을 씁니다. 저는 인간의 본질은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체적으로 내가 원하는 걸 찾아 나가는 것, 그것부터 정신의 성장, 영혼의 성장이라고 생각해요. 정답은 아니지만 여러분들이 올해가 가기 전에 내 인생에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나를 대변하는, 내 영혼을 채우고 싶은 대표책 3권을 선물해 주시는 것부터, 나의 10년 후에 일기를 쓰면서 아날로그 감성으로 내가 이루고 싶은 것들, 내가 꿈꾸는 것들을 써나가고, 10년 후에 나에게 잘 살고 있는지 물어봐주는 것, 그리고 10년 후에 그 노트를 펴보면서 여러분들의 삶의 성숙도를 보는 것, 저는 이것부터 인간성의 시작이라는 얘기를 좀 하고 싶어요. 제가 강의를 다니면서 항상, 하는 것,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되는 것부터 우리는 알고리즘의 노예로 전락하지 않을 수 있다가 제가 하고 싶은 사실 진짜 얘기였습니다. 우리 부모님이 준비한 우리의 특강 시기제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강의를 들어봐 주시기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한글자막 by 한효정 한글자막 by 한효정